박지성, 손흥민이 되고 싶었던 아이
초등학교 4학년부터 마산합성초 주전 축구선수로 뛰었습니다. 전국대회 우승, 소년체전 은메달까지 받으며 박지성·손흥민처럼 세계 최고가 되는 게 꿈이었고, 축구가 인생의 전부였습니다.
그러던 중학교 시절. 신체 조건의 한계와 포지션 경쟁의 벽이 보이기 시작했고, 대한민국 엘리트 스포츠 시스템 안에서 미래를 그리기가 점점 어려워졌습니다. 결국 저는 축구를 그만두기로 결심했습니다.
그 결정이 곧 사회적 낙인의 시작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야, 너 머리에 든 게 있냐?”
“공부는 아무나 하냐? 너 같은 애는 그냥 축구나 하지.”
“그게 네 인생이지, 뭘 더 하려고 하냐?”
가장 가까운 사람들조차 저를 말렸고, 어디를 가도 부정적인 말뿐이었습니다. IQ는 두 자릿수, 책상에 앉는 것조차 고통이었던 저는 정확히 말하면 공부를 못했던 게 아니라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부정과 조롱이 오히려 저에게 불씨가 됐습니다.
“축구선수에서는 실패했고 공부를 해본 적도 없지만, 축구선수도 공부할 수 있다는 걸 내가 보여줄게.”
학교를 나만의 학원으로
처음 공부를 시작했을 때 목표는 거창하지 않았습니다. 딱 하나, “수업시간에 졸지 않고 제대로 듣는 것”. 찬물 세수, 쉬는 시간 산책과 스트레칭, 수면 확보, 졸음이 오면 일어서서 듣기 — 운동선수 시절의 루틴을 공부 체력으로 바꿔 나갔습니다.
중2 2학기, 인생 첫 시험에서 중위권을 받았습니다.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나도 공부를 할 수 있구나. 못한 게 아니라 안 했던 거구나.”그 작은 희망이 이후 인생 전체의 연료가 되었습니다.
중3이 되자 학원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래서 과감히 학원을 모두 그만두고 학교를 나만의 학원으로 만들었습니다. 수업 전 흐름 예습, 수업 중 단 하나도 놓치지 않는 필기, 수업 후 교무실로 달려가는 질문, 그리고 EBS 강의로 부족한 부분 보완.
교무실은 제 공부방이 되었고, 선생님들은 제 학습코치가 되었습니다. 중학교를 전교 3등으로 졸업하면서, “축구선수도 공부할 수 있다”는 첫 번째 약속을 지켰습니다.
한 번뿐인 인생, 최고를 목표로
고등학교 입학 전 진짜 목표를 정했습니다. 대한민국 최고의 대학,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체육교육과. 체육교사였던 아버지께 말씀드리자 아무 말씀도 못하시고 다음 날 다시 상담하자고 하셨고, 저는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서울대 아니면 대학 안 가겠다.”
아버지는 의지를 확인하시고는 “그럼 서울대를 직접 가보자”고 하셨고, 함께 KTX를 타고 1박 2일 캠퍼스 투어를 다녀왔습니다. 햇살이 유난히 눈부시던 날, 서울대 정문 앞에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 사진은 이후 3년간 자습실 책상 앞에 붙어 있었고, 매일 아침 제가 가장 먼저 본 풍경이 됐습니다.
고1 첫 중간고사에서 전교 3등이라는 결과를 받으며 자신감을 얻었지만, 2학기 기말고사에서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수학이 20점 넘게 떨어져 3등급으로 추락했고, 과학은 OMR 마킹 실수로 시험지 한 장을 통째로 날렸습니다.
“노력이 아니라 방법에 문제가 있다.”그 길로 겨울방학 내내 책, 인터넷, 선배·친구 인터뷰를 통해 공부법 자체를 다시 공부했고, 서울대 합격생들의 공통 공부법을 찾아냈습니다. 그러나 적용은 또 다른 이야기였습니다.
고2가 되자 공부량과 난이도가 1학년과 비교가 안 됐고, 아침부터 새벽 2시까지 공부해도 따라가지 못했습니다. 스트레스와 걱정은 극에 달해 우울증·시험불안증으로 이어졌고, 2학년 1학기 중간고사는 말 그대로 폭망했습니다.
그 막막한 시기, 아버지가 한마디 하셨습니다.
“경모야, 쉬는 것도 공부다.
다 하려 하지 말고, 중요한 것부터 해라.”
그날부터 공부 루틴을 완전히 바꿨습니다. 우선순위 중심, 쉬는 시간도 계획 안에 포함, 완벽보다는 실전 중심. 그 결과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 전교 1등을 했고, 2등과는 단 1점 차였습니다. 다시는 공부로 흔들리지 않기 위해 버킷리스트와 좌우명을 만들어 힘들 때마다 꺼내 봤습니다.
공부 시작 4년 4개월, 그날의 합격
고3이 되자 진짜 전쟁이 시작됐지만 더 이상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서울대 합격을 위한 맞춤형 입시전략을 직접 설계했습니다. 내신은 전교 3등 안, 수능은 7과목 동시 대비, 자기소개서는 활동부터 글쓰기까지 사전 기획, 면접은 정보 부족을 메우기 위해 서울 SKY 전문학원의 컨설팅까지 활용했습니다.
축구 유니폼의 이름란에 ‘S.N.U’를 적었고, 네잎클로버에 서울대 뱃지를 붙였고, 심지어 교복에 서울대 뱃지를 달았습니다. 남들은 미쳤다고 했지만 1도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2009년 12월,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체육교육과 합격.전교 꼴찌 축구선수가 공부를 시작한 지 4년 4개월 만이었습니다. 합격 플래카드가 걸렸고, 졸업식 때 상장과 장학금을 싹쓸이했고, 지역에서 주는 장학금까지 받았습니다.
무엇보다 이 합격 소식이 EBS 〈공부의 왕도〉 PD에게 닿아, 2010년 1월 22회 “축구소년의 삼단계 문제풀이법”으로 전국에 방영됐습니다. 그렇게 인생의 두 번째 챕터가 시작됐습니다.
서울대생에서 공부법 코치로
서울대학교 입학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었습니다. 제 공부법에 관심을 갖는 수험생과 학부모가 생기기 시작했고, 단순한 질문 답변에서 시작해 점차 체계적인 코칭으로 발전했습니다.
대학 시절 대치동 공부법 코칭 전문기업 대표코치로, 서울대학교 학습멘토와 입시컨설턴트로 활동하며 컨설팅·코칭·강연 실력을 다졌습니다. 저처럼 공부를 시작해 본 적조차 없던 중하위권 학생들이 자신감과 희망을 가지고 성적을 올리고 꿈을 이루는 모습을 가까이서 보면서 확신했습니다.
“이 방법은 누구에게나 적용할 수 있다. 중하위권 학생들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
그 확신이 2018년 HUMA 아카데미 창립으로 이어졌고, 지금까지 1,000회 이상의 1:1 컨설팅과 100회 이상의 강연을 통해 대한민국 NO.1 중하위권 공부법 코칭 전문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나는 공부를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공부를 잘하게 도와주는 사람입니다.”






